[357호 우종학 교수의 과신문답]

‘지구 6천 년설’을 믿는 사람들

“교회 내에서 지구 6천 년설을 신봉하는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분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과학을 수용하는 저를 신앙이 없고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합니다.”

이런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진리라고 믿는 점은 동일하지만, 창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시간이나 방법, 그리고 과정에 대한 ‘창조의 그림’을 서로 다르게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공존합니다. 어떤 태도가 지혜로울까요?

지구의 연대가 수십억 년이 되었다는 건 과학적으로 잘 알려진 상식입니다. 지구가 6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젊은지구론’은 극단적 문자주의 입장을 제외하면 신학적으로도 비판받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에는 창조과학의 지구 6천 년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지구 나이를 46억 년으로 배우는 청소년들이 교회에서는 6천 년으로 배우면 심각한 신앙적 갈등이 생깁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많은 분들이 염려합니다. 지구 6천 년설을 믿는 사람들이 문자주의와 창조과학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잘못된 정보 때문에 기독교를 반과학적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젊은지구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권면과 창조-진화 문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1-3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새번역)

바울 당시 교회는 고기를 먹는 사람과 채소만 먹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채소만 먹는 사람들은 제사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르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치는 제사에 사용된 음식은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제사에 사용된 음식이라고 해도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두 그룹 사이에 자연스레 갈등이 생겼습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업신여겼고, 채소만 먹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로마서 14장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의 권면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여부에 관한 바울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바울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하면서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20절)고 말합니다. 만일 고기를 먹는 것이 잘못이라면 바울도 그들을 정죄했을 것입니다. 지구의 연대가 46억 년인가 아니면 6천 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분명합니다. 지구 나이가 46억 년임은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자연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잘 드러냅니다.

둘째,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점은 신학적으로 분명했음에도 바울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품어줍니다. 채소만 먹는 교인들은 여전히 유대교 전통에 사로잡혀서 이방신들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일이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로 여기며 비판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권면합니다.

창조-진화 문제에도 같은 적용이 가능합니다. 지구 6천 년설만이 옳다고 믿으며, 하나님이 진화를 창조에 사용하실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고대의 창조론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즉각적이고 기적적으로 만들어야만 진정한 창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이들처럼 믿음이 약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진화를 포함한 어떠한 방법으로도 창조하실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고 자연적 방법을 통해 지구를 46억 년 전에 창조하셨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구 6천 년설을 신봉하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품어야 합니다.

셋째, 바울은 채소만 먹는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당시 교회 안에서 그들은 유대교 전통에 사로잡혀서 제사음식을 부정하다고 보는 어리석은 자들로 취급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깔보았을 것입니다.

업신여기지 말고 조심스레 도울 것

바울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연약함을 채우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5장 1절을 보면, 믿음이 강한 이들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당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모든 음식이 선한데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는 부정하다는 그들의 주장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다릅니다. 유대교 율법에 얽매여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연약한 자로 여겨 믿음이 강한 자들이 그들의 약점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지구 6천 년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고대의 창조론에 얽매여 지구 연대를 6천 년이라고 주장하는 근본주의 입장을 깔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처럼 우리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돕고 그들의 약점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6일이라는 시간으로 제한하거나 현대 과학의 결과를 부정하는 일은 오히려 기독교의 창조론을 훼손합니다. 성경과 과학이 모순된다고 보는 그들의 관점은 오히려 기독교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창조에 관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품고 그들이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섬겨야 합니다.

넷째, 채소만 먹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이 권고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한 권고와는 뉘앙스가 좀 다릅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신앙을 버리고 율법을 범한 자들로 정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판단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고기를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해 먹지 않는다며, 양쪽 입장 모두 선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지구 6천 년설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바울의 이 권고가 적용될 것입니다. 그들은 지구 나이가 46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가리켜 성경과 신앙을 버린 사람들이라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구 6천 년설을 믿거나 지구 연대가 46억 년이라고 믿거나, 양쪽 모두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자들입니다. 과학을 수용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다며 정죄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구 연대에 대한 견해가 다르고 창조의 그림이 서로 다르더라도 그 그림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를 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섯째,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바울의 권고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고기를 먹는 자와 채소만 먹는 자의 입장을 바울이 공평하게 인정한 듯하지만, 채소만 먹는 자를 믿음이 약한 자로 표현한 점과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선언한 점을 보면 바울의 신학적 입장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실천사항을 내놓습니다. 14장 21절을 보면, 믿음이 약한 이들이 보고 실족하지 않도록 일부러 고기를 삼가라고까지 충고합니다. 물론 이는 고기를 먹는 일이 죄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듯이 위선적으로 행동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시험에 들고 실족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지구 6천 년설을 믿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지구의 연대가 46억 년 되었다거나 진화의 방법으로 지구를 창조하셨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들을 과학 상식도 모르는 미개하고 반지성적인 이들로 업신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한 신앙을 나름으로 존중하고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물론 지구 6천 년설이 맞다고 인정해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구 6천 년설을 믿는다는 듯 위선적으로 행동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게 오히려 그들의 신앙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이해·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분량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가 이해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창조를 신학적으로 이해하는 일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는 일은 서로 연관되면서도 매우 다른 과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창조에 대해 더 깊이 알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과학으로 밝혀진 사실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를 더 풍성하게 이해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의 신앙이 성장하고 공동체의 믿음이 자라는 데에 있습니다.

창조에 관한 나의 믿음이 강하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를 폭넓게 이해하고 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창조하실 수 있다는 큰 믿음이 있다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6천 년 전에 우주와 지구와 생명체들을 즉각적으로 뚝딱 창조했다고 믿는 사람들을, 그리고 창조과학만이 기독교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업신여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이 실족할 위험이 있다면 심지어 창조의 다양한 그림들을 아예 꺼내지 않은 채, 창조라는 진리만 함께 누리는 단계에 머무르는 참을성과 이해심과 성숙함이 요구될지도 모릅니다.

■ 더 읽기

창조론 연대기
김민석 지음 / 새물결플러스 펴냄
창조과학과 진화창조론의 입장 차이에서 생기는 십대들의 고민과 갈등, 창조론 탐험 스토리를 그려낸 만화. 젊은지구 창조론의 문제점과, 오랜지구 창조론, 진화적 창조론에 이르는 신학적 함의를 재미있게 다룬다.

 

최초의 7일
존 C. 레녹스 지음 /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펴냄
창세기 1장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 저자는 창세기 1장 본문을 오래된 지구 창조론에 입각하여 이해하는 것이 가능함을 설명한다.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며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 허블 펠로십(Hubble Fellowship), 한국천문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천체물리학 저널> 등 국제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대중을 위한 과학 강연과 저술에도 적극적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새롭게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으며, 블로그 ‘별아저씨의 집’을 운영 중이다.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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