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호 에디터가 고른 책]

이문영 지음 / 오월의봄 펴냄 / 24,000원

이문영 한겨레신문 기자가 쪽방촌 건물에서 쫓겨난 사람들 45명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2015년 이 쪽방촌은 건물주로부터 ‘강제 퇴거’를 통보받은 곳이다. 저자는 당시 이 사건을 탐사보도했고, 이후 5년 동안이나 이곳을 좇았다.

<가난의 경로>라는 연재로 기사화했던 사건이 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보도 이후에도 더 살펴볼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아니면 기사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사실이 있었거나. 저자는 언론이 ‘사건’과 ‘일상’을 구분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건’보다는 ‘일상’에 더 집중한다. 그 내용이 너무나 세밀한 것이어서 아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오히려 더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이 나오지 않는 소리를 목구멍에서 끌어내고 있을 때 확성기에서 증폭된 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누르며 쩌렁쩌렁했다. 진리수호구국기도회와 예수재단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선 안 된다며 ‘동성애 반대’를 외쳤다. ‘9-2x 세입자들 사십여 명은 건물주의 일방적인 퇴거 명령에 분노하며 그냥 이대로 쫓겨날 수 없기에…’ 항의와 저항도 경험이 필요했다.”(122쪽)

특별한 것은 이 책이 기사와 문학을 오가는 연작 소설처럼 읽힌다는 점이다. 가난의 형태와 의미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루에 녹아 있다. 지금까지 가난을 소개하던(이용하던) 정치, 자본, 언론(가난이 아닌 것들)의 표현과는 분명 다르다.

“역사는 누구의 기억인가 … 그들은 기억으로 이 역사를 쓴다.”(109, 117쪽)

여러 사람의 삶의 기억을 따라 가난의 경로가 그려진다. 그 경로에는 “한국인들이 교과서로 배웠던 어두운 역사”가 등장한다.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책 제목처럼 미로 같다. 다 파악하는 것조차, 아니 조금이라도 풀어내기조차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 미로를 다 파악하고 풀어낼 순 없더라도 한번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그렇다.

“노란집을 통과한 가난의 경로가 ‘전국의 노란집들’로 다시 뻗어가고 있었다. 끊기지 않는 길이었다.”(572쪽)

저자는 이 책이 가난을 소비하고 대상화해온 시선을 극복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만으로 가난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가난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거기 머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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