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호 미디어 솎아보기]

1950년의 백선엽 (사진: 미 국방부/위키피디아)
1950년의 백선엽 (사진: 미 국방부/위키피디아)

위키백과에 서술된 ‘백선엽’
구글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위키백과’에 이런 내용이 뜬다.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9기로 졸업하여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하였다. 1945년 만주군 중위로 있을 때 광복을 맞아 평양에 돌아왔고, 독립운동가 조만식의 비서로 활동하다가 소련이 이북 지역에 진주하자 그해 12월 월남했다. … 전쟁 초기 인민군에 패퇴하여 수도 서울이 조기 함락되는 원인을 제공하였으나 미군과 함께 다부동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우며 32세에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대장에 올랐고,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위키백과는 그에 대한 ‘논란’도 정리하고 있다. 국립현충원 안장, 간도특설대 근무와 독립군 토벌 참여, 부풀린 공적 등과 관련해 반론과 비판을 담고 있다. 국립현충원 안장에 대해서는 반민족 친일행위자를 현충원에 묻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구국의 영웅으로 당연히 묻힐 수 있다는 주장이 병존했지만 결국 대전현충원에 묻히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간도특설대와 관련 위키백과는 “그가 썼던 대부분의 자서전에서 이 시기를 아예 다루고 있지 않다”면서 자신의 간도특설대 근무 경력과 관련해 백선엽이 생전에 언급했던 “그러나 역사상의 비극적인 그것(역사적으로 불가피했었던 간도특설대 대원)만큼은 너무도 유감스럽다”는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그가 국군 창군을 비롯해 한국전쟁의 공식 전사(戰史)·군사(軍史) 서술에 영향을 미쳐 편향된 저술을 하게 했다는 지적도 넣었다. “전쟁 초기의 전사를 임의로 개작해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유리하도록 서술케 했다”거나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의 이적 행위를 감추기 위해 《채병덕 장군 평전》을 출간케 하여 이적 행위 하나하나를 변명으로 감싸 안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여러 사람의 참여로 기록을 보완하는 위키백과는 그만큼 한 인물의 공적이나 과오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담긴다. 어느 정도의 오류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객관적이고자 하는 형식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반드시 공(功)과 과(過)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지자나 비판자 입장에서는 공이나 과를 지나치게 부풀리려 할 수도 있지만, 한 인물이나 사건을 보는 역사적 관점은 공과 과를 함께 다루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론과 같은 기록자 입장에서는 비교적 냉정하면서도 차분하게 공과를 짚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백선엽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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