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지난 5일 열린 궁중족발 개업 예배에 참석한 연대자들. (이하 사진: 박김형준 제공)
지난 5일 열린 궁중족발 개업 예배에 참석한 연대자들. (이하 사진: 박김형준 제공)

다시 시작하는 궁중족발
건물주 갑질과 자본에 맞서 투쟁하고 상가법 개정을 이뤄낸 서촌 궁중족발. 윤경자, 김우식 두 사장님이 얼마 전 홍은동에 새 가게를 마련했다. 서촌에 있을 때 디자인 그대로 새 가게에도 간판이 달려 있다. 그 아래에는 오픈을 축하하는 화환이 알록달록 서 있었다. 윤경자 사장님이 상가법 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1인 시위를 할 때, 매일 아침 따뜻한 커피로 연대했던 파리바게트 사장님의 화환도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LP판에서 이문세의 앨범이 돌아가고 있었다. 두 사장님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페인트칠을 한 흔적도 보였다. 상단 찬장 겉면에는 맛깔스러운 족발 사진이 붙어 있었다. 모델로 참여한 내 손을 발견하고선 빙그레 웃었다. 가게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가게 오픈 날인 105, 이곳에서 개업예배를 드렸다.

두 사장님은 오랜만에 연대인들이 온다고 요리사 옷을 맞춰 입고 있었다. 이분들이 요리사이고 자영업자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원래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하는 일로 돈을 버는 분들이다. 요리사 옷을 입은 두 분을 보니 두 분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저는 정말 장사하고 싶고 노동하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최소한의 인원만 모여 개업예배를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야 오픈 첫날 마수걸이 하는 만큼 동네방네 소문내고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반가운 얼굴들의 손을 꼭 잡지도 못했다. 연대인들을 오랜만에 만나는데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빛밖에 볼 수 없었다. 눈빛은 다양했다. 궁중족발의 새 시작을 기뻐하는 눈웃음, 시큰거리는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물빛, 눈을 감고 속눈썹을 파르르거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눈 등 저마다의 눈빛으로 예배에 참여했다.

현장의 증언시간에 김우식 사장님이 발언했다. 노동하게 돼서 기쁘다고 했다. 김 사장님은 국민참여재판 당시 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말 장사하고 싶고 노동하고 싶습니다. 3-4평 되는 내 일하는 공간에서 쫓겨났지만 그 공간에서 저는 여전히 노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저 성실하게 일해서 자식을 먹여 살리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을 뿐이라는 소박한 얘기였다. 쫓겨나는 많은 이의 소망이 이럴 것이다. 김 사장님은 개업예배 시간에 울먹이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계셔 갖구, 다시 노동의 공간을 조그맣게 마련을 했습니다. 이 노동을 하고 싶었는데 세월이라 그럴까요? 시절이 노동을 몇 년 동안 못하게 하고, 그런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다 지나고, 몇 평 되는 노동의 공간에 다시 섰습니다. 노동자는 노동을 해야 되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를 해야 되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해야 되는데, 내 자리에 있지 못하고 몇 년 동안 헤매다가 내 자리로 온 것 같습니다.”

일터. 내가 정직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돈 버는 나의 일터.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임대수익만 얻어가는 사람은 일터의 소중함을 모른다.

예배에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참석했다. 장혜영 의원이 영화와 노래를 만들던 시절, 동생인 장혜정 작가와 함께 궁중족발에 연대 공연을 온 적이 있다. 이번에 재개업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줬다. 장 의원은 예배 순서 중 기도를 맡았다. 태어나 처음 하는 기도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저희에게 고난을 견뎌낼 힘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궁중족발과 궁중족발에 연결된 모든 이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장 의원의 말대로, 궁중족발의 투쟁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건물주가 월세를 자기 마음대로 4배나 올리면 안 된다고, 멀쩡히 장사하던 사람을 그런 식으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돈 없다고 10년을 일궈온 일터에서 쫓겨날 순 없다고, 사람보다 돈이 중요한 세상은 인간답지 않은 세상이라고 외쳐왔다.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가게를 다시 얻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궁중족발 안에서 드려진 개업예배
궁중족발 안에서 드려진 개업예배

 

철문에서 자동문으로 바뀐 식당에 드나들 발길들
설교는 옥바라지선교센터 운영위원이기도 하고 뮤지션이기도 한 황푸하 목사가 맡았다. 황 목사는 궁중족발의 철문이 자동문이 됐고, “우리가 함께 싸우며 채워놓은 정의로운 사랑의 문이 됐다고 설교했다.

투쟁 당시 건물주는 기습적인 강제집행을 열두 차례 진행했다. 열두 번이나 사설 용역 100여 명이 왔다간 것이다. 두 사장님을 가게 안에서 끌어내기 위해 건물주가 고용한 인력이었다. 두 사장님은 이런 폭력으로부터 가게를 지키기 위해 가게 앞에 철문을 덧댔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이미 폐업해서 공사 중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201864, 건물주가 한밤중에 지게차를 동원해 철문을 바수어버린 후, 김우식 사장님은 철문에 손을 대고 고개를 떨구며 탄식했다. 그 철문이 이제는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가게 밖에서 안이 보이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뿐히 열린다. 이제 많은 손님이 드나들 것이고, 그 손님의 발길마다 정의와 평화의 사랑이 함께할 것이다.

설교 후 공동 기도를 했다. , 냉장고, 의자, 부엌, 수저통 등 가게 여러 곳에 연대인들이 손을 올리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가게 구석구석에 축복을 주시기를, 정의로운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기를.

궁중족발은 아직 법정투쟁 중이다. 건물주가 사장님과 연대인들을 여러 혐의로 고소한 건의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나더라도 궁중족발은 상가법 개정을 이뤄낸 곳으로서 쫓겨남이 없는 세상의 머릿돌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 식탁을 나누는 모든 이가 거미줄에 걸리는 것처럼 서로 사랑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하나님이 치신 사랑의 거미줄에 걸려들면 좋겠다. 그래서 쫓겨나는 이웃과 함께 손잡고 쫓겨남이 없는 세상을 소망하면 좋겠다.

 

 

하민지
옥바라지선교센터 홍보와 기획 위원회 운영위원. 사라지는 것들을 보고 듣고 읽고 기록하는 저술활동가다. 누가 사라지고 누가 보이지 않는지 탐구하다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며 살고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 ‘해시태그 #청년 시즌2’ 코너에 월 1회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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