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호 오수경의 편애하는 리뷰]

S는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낳았다. 출산 진통을 겪고 싶지 않아 남편과 상의하여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런 그에게 병원에서는 남편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도 아닌, 남편 부모의 동의라니. S는 그 이야기를 친정엄마와 함께 들어야 했다. 자신이 한 결정을 무시당한 것도 황당한데 자신을 낳은 엄마조차 투명 인간으로 만든 시부모는 과연 그의 몸에 관해 무슨 권리가 있기에 병원은 남편도 아닌, 남편 부모의 동의를 요구했던 걸까? C는 출산 후 틈만 나면 나에게 출산과 모유 수유가 자신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증언하며 제왕절개 분유 수유를 권했다. 그의 증언으로 나는 올해 종영한 개그콘서트에서 자연분만 모유 수유를 외치던 출산드라는 실제로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었을 것이라 확신하며 출산이 여성에게 마냥 축복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우쳤다. J는 나에게 아들을 낳아 다행이라 말했다. “모유 수유를 하면 젖소가 된 기분이고,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딸에게 이런 운명을 물려주기 싫어서였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출산은 누구의 관점에서 축복일까? 모성애는 아이를 낳은 여성이라면 저절로 생기는 감정일까?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는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일까? 내가 들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혼란스러워했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렇듯 입체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넘실거리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들다. 있다 하더라도, ‘출산율이라는 숫자로 호명되거나, ‘모성혹은 맘충이라는 숭배 혹은 혐오의 언어로 대상화될 뿐이다. 그렇기에 여성들의 이야기는 사회적 필요 혹은 무지에 의해 단순하고 납작하게 이해되곤 했다.

출산이 왜 재난이 아니란 말인가!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그렇게 구전되던 재난과 같은 출산과 조난급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생생하게 재현한 격정 출산 누아르. 흔히 산후조리원은 천국이라고들 하는데 이 드라마는 과연 그럴까?’라는 듯 산후조리원이라는 사회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드럭스토어 체인 올리블리최연소 여성 상무로 승진하는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중요한 계약을 성사하는 순간 양수가 터져 출산한 오현진(“딱풀이 엄마”). 회사에서는 최연소 상무지만 출산 세계에서는 초고령 산모가 되어 내가 센터인데 나만 즐겁지 않은 축제인 재난과 같은 출산을 거쳐 세렝게티 정글과 같은 산후조리원에 입성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공식 포스터

산후조리원속 여성들의 이야기는 내가 숱하게 들어온 여성들의 이야기와 겹치면서도 특별하다. 많은 이들이 출산 과정을 쉽게 여기거나, 아이를 낳으면 모성은 단박에 저절로 생기는 걸로 알거나, 모든 산모가 모유 수유하기 적절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곤 하는데, 드라마는 그런 무지와 편견과 억압을 리얼리티로 반박한다. 드라마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숭배하거나 혐오했던 여성의 몸,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달라지는 일상과 추락하는 사회적 지위, 처한 환경과 입장이 다른 여성들 간의 갈등과 화해 과정의 심층을 복합적인 장르에 담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 드라마 장르는 격정 출산 누아르. 여성들의 복합적인 사정을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누아르, 재난, B급 유머, 스릴러 등의 장르 문법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출산 과정을 재난영화처럼 재현한 건, 출산이 타인 입장에서 보면 한 생명이 탄생하는 축복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재난이며 혼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깨알같이 박힌 ‘B급 유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속설과 관습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이 드라마 장르가 굳이 누아르여야 하는 이유도 납득이 된다. 그동안 우리가 공유한 누아르에 관한 이미지는 어떤가. 의리와 우정, 배신과 허세가 난무하는 남성 사회를 떠올리지 않았던가. 이 드라마는 그 사회에 여성을 배치한다. 그렇게 배치만 달리해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재현이 가능하다. 그 안에서 갈등하고, 화해하고, 연대하는 일도 오롯이 여성의 몫이 된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동안 남성 사회가 납작하게 구성한 관습과 신화에 질문을 던지고, ‘산후조리원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빌려 여성 사회를 폭넓게 다룬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워킹맘전업맘의 입장 차이, 모유 수유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여성의 몸과 사회적 지위 등으로 인한 고민과 갈등을 뭉개지 않으면서도 사회속에서 해결 가능하게 한다.

 

이토록 격정적인 여성 서사, 환영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분유 수유를 하겠다는 미혼모가 아이를 위해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는 조리원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장면이다. “(모유 수유가) 엄마에게는 뭐가 좋은데요?” 아이를 낳은 순간, ‘는 죽고, 아이를 위한 존재로만 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질문 아닐까?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반가운 건, 함께 드라마를 본 E 때문이다. E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용에 공감(혹은 지적)하며 자신이 출산하는 과정과 산후조리원에서 경험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이렇게 공감 여부, 출산 여부를 떠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주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 아닐까? 여성의 생애와 몸,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사회가 만들어 낸 당위가 아닌, 여성 당사자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하고 입체적인 질문과 말길을 터주는 이런 서사가 더 필요하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로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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