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거기 직원들은 뭐든 말을 걸면 고우 홈으로 대답합니다. ‘굿모닝하면 고우 홈’, ‘이 사람이 아파요하면 고우 홈’, ‘배가 고파요해도 고우 홈’.

한국의 공항에서 난민신청한 사람들의 하소연입니다. 난민협약과 우리 난민법에는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사유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본국에서 인종, 종교, 정치적 견해 및 특정 사회집단(예를 들어, 성소수자, 내부고발자, 병역거부자 등)에 속한다는 이유로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고, 국적국의 사법제도나 수사기관 등을 통해서도 아무런 보호나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즉 국가에서도 위 사유로 인한 특정인을 보호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경우 그 사람은 난민인정요건을 갖췄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국가로부터 내쳐진 사람, 혹은 더 나아가 본국에 있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집, 나의 거처, 나의 일상이 유지되는 공간을 버리고 떠나왔다는 것은, 심지어 언어마저 생소한 한국에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그들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고우 홈, 고우 홈. 돌아갈 집이 있어야 고우 홈하겠지요. 본국에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면, 애초에 언어도, 문화도, 사람들의 생김새도 많이 낯선 이곳까지 올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난민신청대기실 간판. (이하 사진: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난민신청대기실 간판. (이하 사진: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출입국 난민신청자 중 10%만 입국허가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에 입국한 뒤(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공항 밖으로 나온 뒤)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난민신청을 하는 방법, 또 하나는 공항에 도착한 후 난민신청의사를 밝히는 방법입니다. 다만,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에는 난민사유가 명백히 없는 경우를 판별하여 입국을 금지하고 이후의 정식적인 난민심사에 회부되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회부심사절차를 거칩니다. 공항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난민사유가 명백히 없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송환할 수 있다는 용이성도 있기 때문이겠지요.

문제는 명백히 난민사유가 없는 경우가 아닌 경우에도 불회부결정(정식 난민심사를 하지 않겠으며 입국금지 및 본국송환을 하겠다는 결정이 포함된)을 남발한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관련 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신청자 수 및 회부건수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2019년도에는 전체 188명 중 단 13,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입국자 수가 예년보다 감소한 탓인지) 전체 신청자 수 46명 중 단 5명만이 회부되었고, 회부율은 10% 안팎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공항에서 10명이 난민신청을 하면 그중 1명 정도가 입국허가를 받아 이후의 정식 난민심사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불회부결정을 받은 사람들은 공항 내 시설인 송환대기실’(입국이 불허된 외국인이 출국 비행편을 기다리며 머무는 장소)에서 사실상 구금상태1에 있거나 혹은 환승구역’(보안검색대를 통과한 곳부터 항공기 탑승게이트 입구까지의 구역으로, 주로 면세점 등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서 방치된 채로 불회부 결정을 다투는 소송이 진행되는 수개월을 지내기도 합니다.

송환대기실 내부 사진
송환대기실 내부 사진

위장 난민을 의심하는 눈길들
10명 중 불회부결정이 내려진 9명은 정말 난민사유가 명백히없는 사람들일까요. 난민 A는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본국에서 반정부 시위에 수차례 참가하여 국가 및 사회질서 혼란 등의 혐의를 받아 궐석으로 진행된 형사재판에서 징역형을 여러 건 선고받은 사실을 증명하는 판결문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A는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거짓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에 입국할 수 없다2는 취지의 불회부결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어렵게 A와 연락이 닿았고, 변호인 접견 후 지원을 시작하였습니다. 출입국 직원은 그제서야 A가 제출한 판결문의 진위를 묻기 위해 대사관에 사실조회 신청을 했다면서 판결문에 이상하게 수기로 낙서처럼 글이 쓰여 있는데, 이게 법원에서 작성된 판결문이라는 게 의심된다는 취지의 코멘트도 덧붙였습니다. 며칠 후 대사관측으로부터 ‘A가 제출한 판결문의 사건번호가 실제 존재한다는 내용의 사실조회 회신이 왔고, 이에 불회부결정이 철회되어 A는 공항에 발을 디딘 지 한 달 반 만에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공항 난민신청자들이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불회부결정을 받고 송환되었을지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A는 본인이 사방팔방으로 지원단체를 찾고 필사적으로 전화하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케이스였지만,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들은 출입국 결정에 맞서 이의제기를 해볼 생각도 못한 채 송환되었을 것입니다. 불회부결정을 통보받은 난민신청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점은, 불회부결정 이후에는 공항 출입국 및 관계자들로부터 난민들이 도움을 요청할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유일한 선택지는 한국에서 나가는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회부결정은 보통 전화로 통보되는데, 불회부 사유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이의제기를 하려 하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경우도 있었으며, 불회부결정 이의제기 방법에 대해서도 전혀 고지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당신에게는 변호인 조력권도 없다는 취지의 허위정보를 전달하면서 난민신청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툴 방법을 찾을 의지조차 무력화했습니다.

공항 난민신청자들은 출입국 직원들을 포함하여 난민신청과정에서 만나는 관계자들의 시선과 태도가 가장 힘들었던 경험 중 하나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특히 제가 도왔던 분은 난민신청서를 작성할 때부터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돈 때문에 난민신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신도 가짜 난민이고, 본국으로 송환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내전국인 예멘이나 알시시 대통령의 독재로 많은 반정부활동가들의 사형이 집행되거나 불법구금되는 이집트 국적 난민들은 그 나라 문제없다. 안전하다등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들이 소수거나 이례적이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어필에서 만나온 난민 분들의 90% 이상은 출입국 사무소로부터 위장 난민이라는 시선과 의심에 더해, 위장 여부를 가려내려는 취조식 질문들로 인해 힘들고 억울했던 경험을 토로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그들이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했던 이유는, 난민지위를 결정하는 곳이 다름 아닌 출입국관리사무소이기 때문이지요. 자신들의 생사여탈권, 목숨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들이기에 온갖 무시와 경멸에도 잠자코 있을 수밖에요.

물론, 예외적으로 (제가 만난 난민들 중) 유일하게 출입국에 대해 감사한 기억을 가진 이가 있었습니다. 제주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했는데 다행히도 난민심사 회부결정을 받고 입국이 허가된 분입니다. 회부결정을 받던 날, 출입국 직원들이 케이크를 준비하여 조촐한 파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되어서 축하합니다” “입국 축하해요! 한국 입국하고 나서도 한국 법 잘 지키면서 지내세요등의 축하 메시지와 함께 말이지요. 상상이 잘 안 되는 출입국의 선행에 대해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 난민 분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진짜 축하파티를 해주었다면서 정말 감사했던 분들이고,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끔 한국이나 한국 사람들에게 지칠 때 그때 그분들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난민신청자들이 한국 공항에서 난민신청하는 과정에서 맨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출입국 직원임을 감안하면, 취약한 위치와 상황에 놓인 난민들에게 보인 그들의 친절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환대의 경험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단시일 내에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새로운 일상을 일구며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험을 했던 난민의 사례가 특히나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이로 살기

We are all strangers somewhere.
(
우리는 어디에선가 이방인입니다.)

이 영어문구는 필자가 일하는 어필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어필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의뢰인들의 대부분이 이방인인 까닭도 있지만, 우리도 종종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서는 이방인이 되기도 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곳에 여행을 가거나, 혹은 말이 통하는 국내 여행지라 해도 그 지방 특유의 문화가 낯설어 그제야 ’()임을 인지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혹은 장소나 지역과 상관없이 인적 구성이나 관계에 따라서도 종종 주객의 관계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방인의 의미란 무엇인지, 제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평소의 설교처럼 적실한 언어의 결정체로 풀어내신 김기석 목사님의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낯섭니다. 익숙한 세상에 살면서도 늘 마음이 불안한 이들이 있습니다. 살갗이 벗겨진 것 같은 쓰라림 속에 사는 약자들입니다. 익숙한 세계에서 평안한 것은 대개 강자들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낯선 세계에 주눅 들지 않는 사람들일까요? 저는 오히려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이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성도들을 가리켜 나그네라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의 중심에 당도하기 위해 늘 길을 떠나는 순례자입니다.
(
거둠의 기도서문 중에서)

하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방인의 마음에 가까워질수록, 우리 주변에 머물고 있는 또 다른 이방인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차마 외면치 못하는 마음도 우리의 소망되신 그분께서 주실 것이며, 더욱 크게 들릴 수 있도록 동참하는 마음도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1. 송환대기실 내 처우나 환경은 이미 4-5년 전부터 문제제기가 계속 되었다. 현재까지도 송환대기실이나 환승구 역의 기본 시설이나 환경, 의료접근권 및 아동이나 여성 등 취약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개선된 바가 미미하다. 올해 공익법센터 어필을 포함한 난민네트워크 단체들은 공항 난민 실태를 조사하며 보고대회를 열었다. (이하 모두 필자 주) ** 

2. 난민법 시행령 제5조에는 총 7가지 불회부 사유들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명백히 난민 아닌 자를 판별하기 위 한 객관적이고 형식적인 기준이 아닌 조사관의 재량이 개입될 가능성이나 해석의 여지가 큰 기준들로 규정되어 있 어서, 규정 자체의 불분명함과 주관성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안전 또 는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거짓 서류를 제출하는 등 사실을 은폐 하여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경우”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특히 서류의 위조 여부는 사실 조회를 하거나 진술과의 일관성 여부와도 대조해보는 등 심층조사가 필요함에도 사실 조회 절차 를 생략한 채 조사관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심증만으로 불회부결정을 내리는 사례도 발생하여 문제가 된다.

 

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어필은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부당함에 맞서 정의를 지어가는 것이 어필의 꿈이다. 본지 343(20197)에 인터뷰가 실렸으며, 어필 홈페이지(www.apil.or.kr)에서 어필의 활동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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