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호 보수 정치학자의 국제 이슈 읽기]

필자는 본지를 통해 ‘전시작전권 연기로 통일은 더 멀어졌다’(2014년 12월), ‘동북아 신냉전 기류와 통일’(2015년 6월), ‘대북정책의 실패, 대한민국의 좌절’(2016년 5월), ‘트럼프의 외교 공세와 한국의 대응’(2017년 4월) ‘멀고도 힘든 여정의 시작, 북미 정상회담’(2018년 7월), ‘멀고도 힘든 평화의 여정,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그 후’(2019년 4월), ‘군사주권 확립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모험’(2019년 9월)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군사주권’(2020년 6월), ‘바이든의 외교정책과 한반도의 운명’(2021년 4월), ‘현실주의자가 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2022년 4월) 등 매년 보수 정치학자 관점에서 한반도의 안보 이슈를 다뤄왔다. ― 편집자 주

신냉전 구도 속 미중 관계

한반도와 한민족을 최대 희생물로 만들었던 세계의 제1차 냉전체제(1945-1990)를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금세기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대결 구도가 구축되어 신냉전체제가 형성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 견제를 최우선 외교 목표로 삼아왔고 일본·호주·인도를 동원하여 일종의 안보·경제 협의체 쿼드(QUAD)를 형성해 연합 전선을 펼치고 있으며, 특별히 동북아에서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을 간절히 바라고 한국에는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 역할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가치동맹을 내세워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를 견제하고 고립하려 한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과거 소련 영토였으며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가입시키려 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촉발했다. 러시아는 서방측 제재로 인한 피해를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최소화하고 미국과 견원지간인 이란을 포함시켜 중국-러시아-이란 블록 형성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신냉전 구도는 과거 냉전 구도와 비교해볼 때 한계가 많다. 첫째,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이는 우선 미국 경제 쇠퇴에서 기인했다고 보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GDP의 절반을 바라봤으나 지금은 1/4도 못 미치고 있다. 2030년에는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재정 적자, 무역 적자, 외환 적자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제조업을 살리고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 정책이나 바이든의 미국 제품 구매(Buy America) 정책이나 모두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이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 미국 제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미국의 값비싼 노동력과 높은 복지 비용 때문일진대, 투표에 매달리는 민주국가 공직자들이 국민들 생활수준을 낮추라는 요구를 할 수 없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

재정지출을 줄이려면 해외 주둔 미군 체류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필요를 피할 수 없고, 그 연장선에서 주한미군 철수까지 심심찮게 거론되는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 보았듯이, 미국은 주한미군으로 인한 군비 지출에 큰 부담을 느끼고 한국에 비용을 더 감당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점차 커질 것이고 언젠가 주한미군 철수를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그때를 위해 군사적·경제적·심리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밀착도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심화되었다. 미국은 소비품뿐 아니라 제조업의 부품까지 상당한 분량을 중국으로부터 싼값에 수입하여 쓰고 있는데, 공급처를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옮기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중국은 전자, 자동차 등 기술집약적 중공업에 진출하여 국제적 수준으로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 분야의 부품 공급 등에 있어 미국 기업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부분도 지대하다. 이뿐 아니라 중국은 세계 최대 외환 보유국으로 유사시 미국의 금융을 혼란스럽게 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연고로 신냉전체제는 지극히 느슨한(loose) 냉전체제라 할 수 있다. 두 진영의 지도국이라 말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항상 대치하진 않는다.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신냉전 시대는 필요치 않고 중국과 미국이 공동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바로 이 신냉전체제의 느슨함이란, 중소 규모 나라에 어느 진영(bloc)에도 속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상당히 주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벌써 쿼드 회원국 인도는 미국이 원하는 대러시아 제재 정책에 협조하지 않아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은 신냉전체제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틈새가 예전보다 더 넓어졌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한반도가 또다시 냉전체제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미일 공조와 한일 관계

한국과 일본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에 쉽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다. 일제의 만행으로 이루어진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강제징용에 대한 문제는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이뤄지지 않는 초법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단순히 과거의 문제 때문에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선 군사적 측면을 보자.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미국의 강요로 군대를 갖지 못하는 평화 헌법을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자위대라는 이름의 군대를 편법으로 만들어 꾸준히 병력을 증가시켰고, 현재 군사력이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은 세계 5위로 추정된다. 일본이 앞으로 평화 헌법을 개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무장을 선언할 경우 군사력은 급속히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평화 헌법을 고수하자는 여론이 일본 내에서 다수이지만, 세계 세 번째 경제 대국에 걸맞은 강한 군대를 갖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권리까지 회복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보수 정치 세력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일부 지식인은 언젠가 주일미군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그때를 준비하기 위해 헌법 개정과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이 머지않은 미래에 법적으로 재무장을 선언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일본이 동북아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하길 기대하는 미국도 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상황이다. 한국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 러시아 외에 또 다른 군사 대국을 인근에 두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바라는 대로 한미일 군사 공조가 이루어지면, 한일 간 군사 관계는 일본이 우위를 점하는 수직적 관계로 고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도 이를 원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박근혜 정권 시기인 2016년 미국의 적극적 독려로,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 처리하라는 야권의 비판에도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맺은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일본과 갈등할 때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으나 협박에 가까운 미국의 압력에 따라 조건부 연장으로 입장을 바꾸어야만 했다.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가 한국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일본과 미국이 원치 않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한미일 군사 공조 앞에 선 한국의 위상이다.

그런가 하면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독도에서 185km 떨어진 지역 등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을 실시해 북한을 자극한 일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미일 군사 공조는 북한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결국 군사정책 결정권을 한국이 차지하지 못한다면 이로운 점이 별로 없다.

경제적 측면을 보면 한일 양국 간 분업 구조는 수직적 체제에서 수평적 체제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한국 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야기된 일본의 반도체 부품 보복성 수출 규제는 제한적 성과밖에 올리지 못했다. 한국의 높은 대일 의존도를 전제로 한국에 압력을 가하고자 한 일본의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한국은 경제적으로 일본의 경쟁국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자동차, 전자, 철강 분야는 기업 간 협조보다 경쟁이 부각되고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일본이 독도를 포함한 영토 문제에서 전혀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주변 자원과 군사적 전략지라는 점을 고려할 때 독도가 한국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국토라면, 이 같은 중대한 문제를 놓아둔 채 군사적 종속 관계를 자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민족 염원인 통일을 생각한다면 일본과의 군사 공조는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일본은 주변에 있는 한국이 통일되어 강성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동북아 패권을 두고 중국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일본으로서는 한미일 군사 공조가 필요하겠지만, 한국은 모든 면에서 일본과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현실적 인식

미국과 남한은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북 문제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은 9월부터 11월까지 미사일 발사 26회 등 도발 및 위협을 감행했고, 특히 11월 18일 동해상으로 발사한 ICBM(대륙 간 탄도미사일)은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미, 대일, 대남 위협성 행동은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으로서 남한과 일본은 물론 미국 전토를 공격할 능력이 있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남한을 선제공격할 경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계산이 나온다.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은·김여정 등 최고 권력자의 발언을 통해 핵무기가 단순히 방어용이 아니며 이것으로 선제공격할 수도 있고 서울을 목표 삼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갖기 전 북한과 이를 가진 후의 북한이 취하는 군사·외교 정책이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이 남긴 유언에 다음 네 가지가 포함되었다. 첫째 통일은 아들 대로 가더라도 꼭 이룰 것, 둘째 남조선에 대해서는 절대적 무력 우위로 압도적 위협을 가할 것, 셋째 미국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심리전으로 대할 것, 넷째 북조선의 경제개발을 도울 파트너는 남조선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중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삼갈 것. 이제 북한과 남한의 군사력 균형에서 남한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 앞으로 모든 남북 협상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이 자주국방을 위해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은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들은 미국을 전혀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만이 그들의 유일한 안전보장책이라는 현실적 인식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한이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비현실적 목표에 매달리지 말고 외교적 목표를 더 현실적인 것으로 변경해 북한의 핵 동결이나 군비축소 등을 목표로 협상해야 한다.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협상에 나아가야 한다.

북한은 유엔 등에서 가해지는 경제제재 해제 혹은 완화,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일차적으로 바라고 있다. 그 후에 북한은 대규모 투자 등 경제협력을 원할 수 있는데, 남한이나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북한이 원하는 것을 일부나마 줄 수 있다는 인식하에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냉전 상태가 길어지면 핵 능력을 포함한 북한의 무장력이 더욱 증가하리라는 현실적 가정하에 대북 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2022년 정권 교체로 행정부를 장악한 보수 세력은 대한민국 주권 확립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권리를 강고히 하여 신냉전 구도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과 미국에 대해 더욱 의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해 한 발이라도 전진해야 할 것이다. 보수 세력이 갖고 있는 유리한 점은 국민들로부터 친북 세력이라고 비난받을 염려가 적다는 점이다. 새 정부가 외교 주권, 군사 주권 확립을 기반으로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남북 공동 발전을 위해 전력투구하도록 국민적 요구와 성원이 필요한 때이다.

박문규
미국 시카고 대학, 아이다호 주립대학에서 공부한 정치학자다.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 대학(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가르쳤다. 저서로는 남한의 현대 정치를 논한 《뜻으로 본 한국 정치》가 있으며, 북한의 정치적·경제적 변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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