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호 보수 정치학자의 국제 이슈 읽기 8]

바이든의 등장과 극우 세력의 득세

지난해 11월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었다.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 트럼프는 무모하고도 무책임한 방임 정책으로 일관했고, 이와 함께 곤두박질친 경제는 미국 국민 다수를 분노케 하였다. 이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패배에 승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 국회의사당 난입이라는 극단의 사태가 벌어진 후에야 비로소 백악관 주인 자리를 내주었다.

이번 선거로 트럼프라는 돌출아의 횡포가 사라졌으니 미국이 본래의 민주주의국가로 회복할 것이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우선, 트럼프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침체에 문제적으로 대응했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미국 국민의 46.9%와 25개 주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는 미국인 상당수가 트럼프의 인종주의, 백인우월주의, 이민자 혐오, 반중국 정책, 미국제일주의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제3의 정당을 만들 필요도 없이 공화당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상원 탄핵 재판이 부결된 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우선주의라고 불리는 비인도주의적 입장이 기존 정치 과정의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폭력적으로 표출되었다. 극우파 정치 집단이 국회의사당 경비 병력의 저지를 물리치고 의사당을 점령하면서 하원의장 집무실을 약탈하고, 상원의장인 부통령을 향해 “교수형에 처하라”고 외치며 다녔다는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미국 경제의 위기,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자 불안해진 사람들이 기존의 법칙을 무시하고 폭력을 써서라도 단기적 이익을 지키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에 이민자, 유색인종, 그리고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중국 등의 신흥 산업국이 희생물로 바쳐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극심한 경제 위기에 처했던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가 국민 일부의 지지를 받고 등장해 국회의사당을 불태우고 유대인들을 희생물로 삼았음을 상기해보자. 한국은 미국 극우 세력의 등장을 예의주시하면서 제3세계의 일원으로서 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바이든 외교정책의 윤곽

대통령 당선 전 정치권 밖에서 머물던 트럼프와는 다르게 바이든 대통령은 20대 청년기부터 정치권에서 일했다. 특히 외교 분야에서는 상원 외교위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전문성 있는 정치인이다. 오랜 경험은 그의 능숙한 외교력을 보장해주겠지만, 이미 고정된 그의 가치관과 외교적 안목이 정책적 유연성을 제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바이든은 자유주의 매파(hawkish liberal)로 알려진 정치인이다. 그는 민주주의, 평등, 인권,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렇지 않은 세력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하고 있다(정치를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세력과 세력의 갈등으로만 보는 헨리 키신저 유의 현실주의와 대조를 이룬다). 취임 후 맨 처음 내렸던 조치가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는 것이라든지, 올해 2월 1일 미얀마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즉시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미얀마 군부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암시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정치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바이든은 불가능한 신기루를 좇는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가치 외교’라고 부르는, 민주적 가치 존중이라는 명분이 현실적 이익을 찾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2월 19일 화상으로 열린 뮌헨 안보회의에서 “러시아가 나토를 약화하려 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해킹을 비난했으며, 북대서양 방위조약 국가들을 향해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자”고 말하면서 대러시아 강경정책을 암시하였다.

2월 24일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내정된 윌리엄 번스가 상원 정보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중국이 지적재산권을 훔치고 있다며 중국을 가리켜 자기 국민을 억압하는 강력하고 권위주의적 적대국이라고 지칭하였다. 동북아 패권 유지 혹은 미국 경제의 중국 의존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중국의 인권문제와 내부 정치를 공격 명분으로 삼고 있다.

그다음으로 지적할 점은 바이든 정부도 중국을 미국에 도전하는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도-태평양에서 호주, 인디아, 한국, 일본, 타이완을 엮는 대중국 봉쇄정책을 계속할 것이 확실하다. 이는 미국의 민주당, 공화당, 국회 그리고 모든 행정부서의 일관된 입장이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동맹국 주장을 어느 정도 포용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우선주의를 겉으로 내세우지만 않을 뿐 트럼프 행정부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냉전체제 구축을 정당화하며, 위태로워진 인도-태평양 패권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셈이다.

바이든은 외교를 할 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협상하는 방법보다는 경험을 오랫동안 축적한 관료들에게 일차적 협상을 맡기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정책 수립이 관료들에 의해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외교·국방 정책 역시 국무성, 국방성, CIA, 재무부, 상무부 등에서 활동하는 보수 관료들의 의사에 따라 수립·집행되리라 전망한다.

바이든 정부가 한국에 거는 기대

대한민국을 향한 바이든 정부의 기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의 연합전선에 한국도 핵심적으로 참여하여 이른바 린치핀(linchpin, 바퀴가 빠지지 않게 축에 고정하는 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둘째,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노력을 기울일 때 한국이 전위세력이자 종속국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셋째, 미국 제품 시장 특히 미국 생산 무기의 좋은 구매자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이 목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을 리더로, 일본을 중간리더로 여기는 한미일 동맹의 확실한 일부가 되어, 미국산 무기로 무장해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의 적국 혹은 가상 적국을 최전방에서 대치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일본과 한국의 갈등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다. 트럼프의 외교진용인 토니 블링컨, 제이크 설리번 등은 2015년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해 위안부 합의를 밀어붙인 주역들인데, 이들이 계속해서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군사적 동조를 밀고 나갈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월 17일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의 입을 빌려 “한미일의 생산적 협력의 중요성과 한일 협력을 통한 대북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받는 엄청난 압박은 대통령이나 고위 보좌진의 발언과 행동을 통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경우 독도 문제 등으로 영토적 갈등이 있는 반면, 중국은 영토 분쟁 가능성이 적을 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보다 큰 교역의 상대이다. 중국과 관계가 틀어질 경우 입게 될 손실은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북 통일 정책을 위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나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형성된 냉전 구도의 일차적 피해자는 우리 민족이었고, 냉전의 결과는 민족 분단과 한국전쟁이었다. 다시 동북아에서 구축되는 냉전 상황 가운데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갈등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

복잡해지는 한국의 대북정책

바이든이 이끄는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갈등 요소는 대북정책에서도 두드러진다. 우선 바이든은 대통령 후보 시절 트럼프와의 토론에서 ‘트럼프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을 인정했다’며 맹비난했다. 그는 북한 체제를 북한 백성의 인권을 짓밟는 비도덕적 체제로 인식하고 김정은 통치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월 7일 북한 문제에 대해 “인권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오랫동안 공석으로 둔 북한 인권을 담당하는 대사도 조만간 임명되리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북한을 자극할 뿐 아니라, 북한과 원만하게 대화하기 위해 인권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도 상충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지시로 탈퇴한 유엔인권위원회에 3년 만에 복귀하기로 선언하여 다시 세계 각국의 인권문제에 관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바이든에 의해 국무부 동북아 담당 부차관보에 임명된 정박(Jung Park, 한국명 박정현)은 “대북 제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최근 발행한 그녀의 책 《비커밍 김정은》(Becoming Kim Jong Un)에 적었다. 그녀는 대한민국 국회가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을 보고, 이에 대해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고 대한민국의 언론의자유를 훼손시킨 행위’라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으며, ‘김정은의 마음이 상할까 봐 인권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직설적 표현까지 하였다.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필자는 본지를 통해 ‘전시작전권 연기로 통일은 더 멀어졌다’(2014년 12월), ‘보수 정치학자가 본 동북아 신냉전 기류와 통일’(2015년 6월), ‘대북정책의 실패, 대한민국의 좌절’(2016년 5월), ‘트럼프의 외교 공세와 한국의 대응’(2017년 4월) ‘멀고도 힘든 여정의 시작, 북미 정상회담’(2018년 7월), ‘멀고도 힘든 평화의 여정’(2019년 4월), ‘군사주권 확립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모험’(2019년 9월)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군사주권’(2020년 6월) 등 보수 정치학자 관점 에서 한반도의 안보와 군사주권 이슈를 다뤄왔다. 이 글 역시 앞선 논의의 연속선상에 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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