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호 그들이 사는 세상 -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부 송기훈 목사]

노동 선교의 요람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산선’)60년 넘게 노동자들 곁을 지켜왔다. 산선의 역사는 1958년 근처 공단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영등포에 자리잡은 날로부터 시작된다. 산선은 조지송 초대총무가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 중반 이후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주목했고, 산업화 시기 노동운동을 태동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시대가 바뀌고 다양한 단체가 등장하면서 노동운동의 중심에서는 한발 물러났다. 지금은 노동 선교정신과 역사를 간직한 선교기관으로서 역할을 탐색하는 중이다.

노동자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주목해온 산선의 활동가에게 이번 커버스토리 일용할 양식에 관해 묻는다면 어떤 답을 들을 수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24일 산선의 임시 거처(건물 리모델링 문제로 소속 노회 사무실을 빌려쓰고 있다)에 방문해 송기훈 목사를 만났다. 이곳 노동선교부에서 기관목회를 하는 그는 사무실에 매달 오는 복음과상황을 읽고 주위 사람에게 권하는 독자이기도 하다. 송 목사에게 산선과 일용한 양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송기훈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br>
송기훈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산선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2018년이 산선 60주년이었어요. 한 세대가 끝난 것 같고 저명한 분들이 돌아가시는 이 시점에 우리도 사라져야 하나, 역사의 화려한 부분들만 살펴봐야 하나 내심 복잡하더라고요. 지금의 산선은 노동계에서도 잘 모르고, 교단에서도 잘 모르는 단체가 되었거든요.(웃음) ‘영등포산업선교회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어요. 시작할 당시엔 공장들이 영등포에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지방에 더 많잖아요. 이전에는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엄밀한 구분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편의점 사장님이나 플랫폼 노동 종사자분들처럼 노동이 개별화·파편화해 있고요. 직접적인 노동운동을 하는 데 실력이나 규모의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이 시점의 산업사회에서 어떻게 선교할 수 있을지 원초적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원초적 질문을 놓고 어떤 논의와 활동을 해오셨나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은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지원하거나, 해고된 노동자분들과 방전된 활동가분들의 마음을 돌보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죠. 이분들은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적과도 싸워야 하지만 내부문제가 있을 때 말하기가 더 어렵거든요. 혹여나 관계가 틀어지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여러 단체가 연대하면 이견도 생기는데, 사람들이 지쳐서 운동을 포기하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해왔어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연쇄 자살 이후 와락치유단이 발족한 것처럼, 산선도 상담네트워크를 구축해 노동자들 마음 돌봄을 위한 집단치유 프로그램이나 개인상담을 진행해왔죠. 특별히 산선에 실무자로 일하고 계신 홍윤경 부장님이 10년간 이 부분에 기여하셨어요. 홍 부장님은 이랜드 해고 노동자 출신이자 영화 카트주인공의 모티프가 된 분이기도 해요. 또 해고농성장 기도회에 참석하는 방식으로 여러 기독단체와 함께하면서 산업선교회 내의 생협을 통해 물품을 전달하기도 하고요.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현장을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상대적으로 지원이 적거나 외면된 곳으로 가려고 해요. 최근에는 아시아나 하청기업 케이오의 부당해고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집회에 참여하고 있죠. 회사는 매각을 위해 사원들에게 무기한 무급휴직이나 명예퇴직을 권고했는데, 이 안을 거절한 여덟 분이 농성을 시작하셨다가 지금은 다섯 분만 하고 계세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도 받았지만, 회사는 항소한 상태입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연대 활동을 벌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코로나 시기라, 현장집회나 모임이 상황의 긴박함에도 사람들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던 것 같아요. 현재 기독교의 다양한 모임들도 코로나 확산의 주범 정도로 인식되는 듯하니,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죠. 산선의 주된 프로그램이 현장을 중심으로 매년 34일간 진행했던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예요. 코로나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기독 청년 두 명을 모집 선발했어요. 그중 한 명은 직접 플랫폼 노동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이번 달부터 가구공장에 취업해 일하고 있어요. 6개월간의 프로젝트를 통해 앞으로 교회에서 일들을 해나갈 이 청년들의 사유와 경험이 확장되기를 바라요. 다른 한편으로는 투쟁현장에 나가 유튜브로 소식을 전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교회나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현장심방이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2019년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는 임재춘 전 콜텍지회 노조 조합원(좌)과 송기훈 목사(우). ⓒ복음과상황 정민호<br>
2019년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는 임재춘 전 콜텍지회 노조 조합원(좌)과 송기훈 목사(우). ⓒ복음과상황 정민호

이번 커버스토리 주제인 일용한 양식에 대해 고민하다가 단식투쟁을 하는 분들이 떠올랐어요.
무엇이 그분들을 오랜 기간 단식하게 만들까, 나는 교회 다니면서 하루 금식하는 것도 힘든데 왜 그분들은 정신이 오히려 맑아지실까, 대체 어디에서 힘을 얻으실까 싶어요. 교회 다닐 때 형식적으로 많이들 하는 금식이나 몇몇 국회의원이 벌이는 짧은 단식투쟁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김용균 씨의 어머니나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단식 20, 30일을 넘기면서도 힘 있고 또렷하게 말씀하시는 내용을 들어보면 이분들에게는 밥을 끊을 만큼 간절한 게 있다고 느껴져요. 저는 그걸 다 알 수 없죠. 그만큼 삶이 억울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본 적이 없으니까요. 진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 같았어요. 투쟁도, 단식도.


고공농성장 같은 어려운 현장에서 매일 밥을 올리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줄로 도시락을 매달아서 위로 올려보내고 배설물을 내려받는 모습을 보면, 사람 목숨이 한 줄에 달린 것 같더라고요. 위태롭기도 하면서 숭고해 보이기도 하고요. 산선과 시민사회가 연대해서 (농성하시는 분이) 매일 드실 수 있도록 밥을 준비했던 경우도 있었죠. 고공농성의 경우, 위에 계신 분들은 밥도 최소한으로 드셨다고 알고 있어요. 매번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 죄송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사님 개인에게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선은 생존권, 그리고 존엄과 연결되는 문제죠. 그런데 단순히 임금이나 노동법, 고용구조 문제로만 접근하면 관념화해서 딱딱해지기 쉽죠. 종교의 언어도 그럴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복잡한 수식어를 떼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고 살잖아요. 하지만 어떤 청소 노동자는 화장실 한구석에서, 누구는 고공에 매달려서, 거리에 천막을 치고 식사하고 있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구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손보다가 젊은 나이에 사망한 김 군이나 김용균 씨 가방에 들어있던 컵라면 하나도 사람들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죠.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의 먹고사는 일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느껴지죠.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같이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농성하는 사람들을 오해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농성천막 안에 들어가 커피라도 같이 한잔하고 나면, 무서워 보이고 낯설어 보이는 농성장에도 사람이 있구나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많이 해요. 그 지점에서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찾고 싶어요.
 

2019년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고공농성장 앞에서 열린 기도회에 참여하고 있는 송기훈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br>
2019년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고공농성장 앞에서 열린 기도회에 참여하고 있는 송기훈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보수 신앙을 배경으로 자라났고 시대를 모르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부채감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동기만을 가지고 일하는 건 자기 학대에 가깝죠. 실제 현장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거든요. 누군가 정의감에 빠져서 그런 일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죠. 사람들은 하하호호 행복하게 지나가는데, 나는 쭈그려 앉아서 뭐하는 짓이냐 싶을 때도 있고요.(웃음) 법적으로 이겨도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때도 있고, 투쟁 결과가 안 좋을 때도 있어요. 무기력감을 느끼거나 우울증 비슷한 걸 겪기도 했죠. 그런데도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자문했을 때, 일단은 산선에서 일하는 동료에게서 힘을 얻고 있어요. 운동이란 게 강력하고 거칠고 파괴적이지만은 않고, 명랑하고 선하고 성실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거든요. 그리고 현장에서 힘을 다시 얻어요. 제게는 바로 그 자리가 목회자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인 것 같아요.

 

독자 인터뷰를 요청하자 내가 복상 독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는데요.
정기구독을 하지는 않고 사무실에 오는 잡지를 받아보고만 있으니까요.(웃음) 인터뷰할 내용이 있나 싶기도 하고. 매달 복상을 받아보고 산선 소식 공유하면서(산선은 2019년 본지에 산선의 전체 부서를 소개하는 연재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6차례 진행했다) 느끼는 고마움이 있어요. 꾸준히 관계를 맺으면서 호흡할 매체가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거든요. 매체가 지닌 힘이나 전문성이 있잖아요. 산선 힘만으로는 관련 소식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복상이 현장 소식을 속도감 있게 전달하는 매체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천천히 바라봐야 하는 산선의 복잡한 일들을 잘 소개할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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