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호 책과 사람] 《제인 오스틴 무비 클럽》 저자 최은 영화평론가

“스티븐턴 교구 목사 고(故) 조지 오스턴의 막내딸 제인 오스틴을 기억하며. 기독교인의 인내와 희망으로 오랜 질병과 싸우다 1817년 7월 18일 마흔한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다.”1)

윈체스터 대성당 북쪽 통로에서 찾을 수 있는 이 묘비의 주인공은, 이곳에 묻힌 뒤 200년이 지나 스테디셀러의 표본이 되었다. 이 사람은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 그는 오늘날에도 ‘오스틴 현상’을 일으키며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돼있다. 그가 남긴 전작(全作)이 영화·드라마 등으로 재탄생하고, 그의 흔적이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재해석되는 것을 통해 확고해진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복음과상황〉에서 ‘시네마 플러스’ 등의 코너로 영화 비평을 장기 연재한 바 있는 최은 영화평론가는 1월 말, 영화를 통해 제인 오스틴을 읽어내는 《제인 오스틴 무비 클럽》(북인더갭)을 출간했다. 원작, 각색 소설, 영화 등을 포함해 책 12권과 영화·드라마 26편을 담아낸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을 두루 섭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풍자와 아이러니의 방식을 통해 약자와 타자를 배제하지 않는 지성적 태도로 글쓰기를 해 온 오스틴의 입체적 면모를 맛볼 수 있다.

단순히 연애담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제인 오스틴 월드’를 다채로운 관점에서 정리한 최은 평론가를 3월 2일 서울 서교동 초록리본도서관에서 만났다. 요즘은 수석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를 올가을에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제인 오스틴 작품들의 특징,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비롯해 《제인 오스틴 무비 클럽》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 2019년 12월 〈복음과상황〉 연재를 마무리하고, 2020년을 오롯이 이 책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안다. ‘제인 오스틴’을 주제 삼아 책으로 출간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위대한 개츠비》 《레미제라블》 《안나 카레리나》 등의 고전과 성경 이야기가 스타급 배우들이 등장하는 대작 영화(〈엑소더스〉 〈선 오브 갓〉)로 만들어지던 2013년 전후에 기획했던 ‘고전 인문학’ 강좌가 계기였다. 고전적 스토리에 대한 낭만과 향수가 현대기술과 만나 스타급 배우들의 연기로 스크린에서 재연되는 모습이 영화를 전공한 입장에서 흥미로웠다. 문학과 영화가 상호작용하는 게 이 시대의 의미 있는 현상으로 느껴졌다.

강좌를 기획하던 도중,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2005)도 넣고 싶었다. 찾아보니, 오스틴이 남긴 장편소설 6편 전부가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더라.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각색돼서 나온 작품이 수십 편이었다. 이렇게까지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데서 호기심이 생겼고, ‘제인 오스틴’을 주제로 여러 차례 강의를 진행하게 되면서, 그중 10강에 걸쳐 진행한 강좌 내용이 지금의 책으로 만들어지는 바탕이 됐다. 10강을 마치니 동명의 중편이 원작인 〈레이디 수잔〉이 개봉했고, 책이 완성될 즈음 〈에마〉가 또 나오면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갖는 생명력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 책을 준비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겠다.

처음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접할 때만 해도 ‘너무 온건파 아닌가?’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이 주체적이지 못한 거 아냐?’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죄다 연애담이고, 갈등 끝에 결혼하는 것으로 끝이 나니까. 신분 상승, ‘신데렐라’ 이야기 같기도 하고. 비슷한 이유로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것에 ‘길티 플레져’(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를 갖는 분들도 있다. 지적인 사고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일수록 그렇더라. 충분히 급진적이거나 지적이지 않다고 느껴져서다. 

사랑과 결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인 오스틴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안에 훨씬 더 깊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오늘날 급진 페미니스트들에게조차 급진적으로 이해되는 지점이 적지 않다. 그 시대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 작가로서 풍자와 아이러니의 방식으로 자기 주관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했으니까. 여러 페미니즘 서적에서 오스틴이 언급되는 구절들과 만나기도 했다.

더욱이, 많이들 아는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에마〉 〈설득〉을 지나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등의 작품을 다루게 되자 원작에서 느꼈던 매력이 변주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의 매력이 훨씬 도드라졌다. 내가 공부한 영화 장르이론이나 대중문화이론,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등을 적용해서 다채롭게 해석하는 맛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제인 오스틴 작가론을 비롯해 작품론, 원작을 각색한 영화와 새롭게 재구성한 현대물까지 섭렵할 수 있는 책을 쓰게 됐다.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한 작가의 전작을 보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읽다 보면 제인 오스틴에게서 가볍고 편안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심오한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즐겁게 읽어 주시길 바란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 제인 오스틴의 전작이 끊임없이 영화, 드라마 등으로 재탄생하고 재해석되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대중독자가 느끼는 매력과 창작자들이 느끼는 매력,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일단 이야기가 쉽게 읽히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당시 여성들의 욕망, 계급사회를 향한 사람들의 불만과 문제의식을 해소하는 것을 통해 행복감을 준다. 특히나 각색된 영화를 봤을 때,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나와 현대적 감각으로 매력을 발휘하는 데서 얻는 즐거움도 있다. 이처럼 부담 없이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게 큰 요소다.

다른 하나는 창작자들이 느끼는 매력인데, 이미 제인 오스틴을 원작으로 한 좋은 작품이 많은데도 왜 계속 각색돼서 나올까? 창작자 입장에서는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지만 작품의 모든 점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 것이다. 재밌어서 빠져들었다가 ‘계급주의자 아니야?’ ‘신데렐라 이야기 아니야?’ 물음을 던지게 하는 지점과 만난다. ‘왜 이런 식으로 표현했을까?’ ‘시대에 갇혀 이야기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에 주목하게 된다.

어떤 서사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한 서사가 특정 시대에 완벽해 보이는 이유는, 그 시대 정서에 완벽하게 부합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은 장점이 많은 작가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변주할 여지가 많다. 그런 면에서 패트리샤 로제마의 〈맨스필드 파크〉(이 영화는 원작이 침묵하고 있던 영국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나 〈노생거 사원〉(원작이 고딕소설을 패러디한 것처럼, 이 영화는 공포물을 패러디한다)이 제인 오스틴이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받은 좋은 사례가 된다.

- 제인 오스틴 작품들에 나타난 글쓰기 특징을 소개해준다면.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이나 약자들까지도 다채로운 시각에서 보여준다. 편견·배제 없이 약자들을 포용하는 자세가 담겼다. 분명한 주관을 갖고 글을 쓰지만, 생각이 다른 대중·독자·관객을 배제하거나 꾸짖지도 않는다. 비난·무시당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조목조목 할 말을 다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제인 오스틴은 자기 독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다수 대중이 엘리자베스(사랑 없는 결혼에 저항하고 남성들을 당당하게 거절하는 여성,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처럼, 에마(결혼에 목매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에마》의 주인공)처럼 살기 어려운 것이 당시의 현실인데, 작중 주인공과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보듬는다. 당대의 결혼시장을 비판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수용 가능한 형태로 받아들이게 이야기하는 화법·문체 등이 내용과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제인 오스틴은 풍자와 아이러니를 잘 사용했다. 당시의 풍자문화, 풍자문학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노골적인 언어로 풍자를 한다. 그래서 헨리 필딩 같은 사람은 천박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도 전통적인 풍자문화를 보면, 하회탈을 쓰거나 거친 언어를 드러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오스틴은 아이러니를 활용한, 약간은 우아한 풍자를 사용했다. 냉소적이지 않은 태도로 품위와 품격을 잃지 않고 할 말을 다 했다. 그러면서도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재치를 보여줬다. 위트와 아이러니를 섞어서 사회를 풍자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작품을 읽었다. 그런 점에서 노골적인 방식의 풍자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해본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매우 부러운 점이다. 이 같은 문체의 특징이 작품마다 다 드러난다.

오스틴의 젊었을 적 삶을 재구성한 〈비커밍 제인〉의 한 장면. 앤 해서웨이가 제인 오스틴을 연기했다. 영화 〈비커밍 제인〉스틸컷
오스틴의 젊었을 적 삶을 재구성한 〈비커밍 제인〉의 한 장면. 앤 해서웨이가 제인 오스틴을 연기했다. 영화 〈비커밍 제인〉스틸컷

-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라는 《오만과 편견》 첫 문장이 제인 오스틴의 풍자와 아이러니를 표현한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구절이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가 마을에 들어오면, 누구나 다 그를 자기 재산으로 여겨 넘보게 된다. 아내를 찾으러 온 그 남자에게 주도권이 있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사람이 주도권을 갖고 이 사람을 재산으로 여기는 상황이 발생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오스틴은 한편 “남성 여러분 좋아요, 당신들에게 권력 있고 재산 있고 지위 있고 명예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갖고 결혼시장으로 나왔을 때 당신들은 결국 재산 취급밖에 못 받지 않나요?”라고 반어적으로 묻기도 하는 것이다. 재산이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몰려드는 이들과 당신의 삶을 함께하고 싶은지 돌려 이야기한다. “당신은 당신 재산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 아닌가요? 재산보다 더 가치 있는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 아닌가요?”라고 돌려 말하면서, 그것을 긍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또 이런 표현 방식이 ‘약자들 언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힘 있는 귀족은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권력이 있으니 “그러지 마”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강자, 권력자의 언어는 그렇다. 제인 오스틴은 중간 계급에 속하기는 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 작가로, 약자 입장이었다. 소녀 때부터 글을 쓴 그는 자기 위치에서 최선의 방법인 돌려 말하기 기술을 통해 할 말을 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존중할 만하다.

- 책에서 다룬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제인 오스틴이 10대 시절에 쓴 작품인 《레이디 수잔》이다. 제인 오스틴의 글쓰기 특징이 많이 드러난다. 이를 각색한 영화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감독이 코믹하게 잘 담아냈다. 이 작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여성이 한 명 등장하는데, 제인 오스틴의 사촌언니 엘리자 드 푀이드를 모델로 한다. 프랑스 귀족이었던 남편이 프랑스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후 영국으로 온 여성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애증의 시선으로 사촌언니를 바라봤던 것 같다. 가장 사랑했던 오빠 헨리가 10살 연상인 엘리자와 애정 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봤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기도 했을 것이고, 어린 소녀 눈으로 프랑스에서 온 언니를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쓰기’라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세계가 나타난다.

더욱이 《레이디 수잔》은 서간체소설로, 제인 오스틴 특유의 풍자와 아이러니 기법이 잘 드러난다. 다중화자적 특징으로 여러 사람의 편지가 담겼기에, 독자 입장에서 교차하는 시선들과 이야기들에 대한 능동적 읽기가 가능하다. 주인공 수잔 버넌은 남편과 사별한 바람둥이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당시 결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해서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위치도 드러난다. 전형적인 바람둥이 남성 캐릭터의 특징을 비틀어 여성에게 부여한 셈이다.

연애담인데 연애편지도 별로 나오지 않고, 남성들에게는 목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방식이 제인 오스틴의 글쓰기에서 오는 매력과 어우러진다. 전형적 남성상을 여성으로 전복하고, 여성의 현실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오늘날 페미니즘 이슈와도 맞물리는 복합적인 작품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제인 오스틴을 통해 ‘최은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을 것 같다. 평소 어떤 글쓰기를 지향하나.

나는 글을 쓸 때 두 가지 욕망이 있다. 술술 읽히는 명확한 글을 쓰고 싶다는 것과 ‘행간에 담긴 메시지를 알아보는 독자를 만났으면’ 하는 것이다. 일부러 ‘감추는 글쓰기’를 할 때가 있는데, 몇 구절에 의미를 숨겨 놓는다. 대중적인 글, 교계가 아닌 사회를 대상으로 글을 발표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내 마음속에 복음의 언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직접적으로 ‘구원’ ‘복음’을 언급하지 않는다. 술술 읽혀도 그리스도인 독자나 상황을 아는 지인, 눈 밝은 독자가 읽었을 때 ‘아, 이거!’ 할 수 있는 복합적인 글을 쓰려 한다.

내가 완전 교계에만 있지도 않고, 완전 일반 대중에 속해 있지도 않다 보니 그것을 추구하는 것 같다. 마음속에 기독교적 세계관과 이슈가 있는데, ‘어떻게 일반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추구하는 즐거움인 셈이다. 움베르트 에코가 소개했던 글쓰기 방법이기도 하다. 모델독자를 상정하는 것, 이중의 독자 즉 이야기의 층위가 있다면 표층과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독자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 방식이 나에게도 재밌게 쓰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한편, 글을 쓸 때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게 된다. ‘나는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아’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웃음) 교계와 사회의 사이 지점에서 오래 활동해서 그런지 몰라도, 균형을 잡으려는 습성이 있어서 어떤 이야기든지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 그래도 내가 갈 수 있는 한 가장 급진적인 지점까지 가는 것을 추구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 내 성향 때문에 어차피 멀리 못 간다. 어떤 사안은 ‘내가 이쪽 편을 확실하게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갈등을 싫어하기 때문에 망설인다.

- 오늘날 기독교인에게 제인 오스틴이 주는 통찰은 무엇인가.

요즘 SNS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보면, 양극단으로 주장이 갈려서 무리를 짓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더 공격적으로 이야기해야 ‘좋아요’ 숫자도 늘고 돈도 들어오는 현실이 씁쓸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했듯이, 제인 오스틴은 대놓고 사람들에게 칼날을 휘두르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200년 전 이야기인데도 귀 기울여 듣게 만드는 제인 오스틴의 힘은 이런 태도에서 나왔다고 본다.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지성과 주관에 대해 ‘프라이드’를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거나 무시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종종 너무 자신 있는 태도를 발견할 때가 있다.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리 아닌 것을 배격하는 데 용감하다. 진리는 그리스도이시지, 우리가 아니잖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진리인 것은 아닌데, 겸허함이 부족하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네가 몰라서 그래’라는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제인 오스틴과 같은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제인 오스틴은 평생 비혼인 채로 살았지만, 그 시절 결혼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가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그 삶을 사는 주인공 아닌 인물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그들을 배려하고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맥락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더욱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선택을 하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 원칙이라고 믿는다”라는 록산 게이의 말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도 자신의 의무이며 그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의 기본원칙이라고 주장한다.

‘나라면 태극기 들고 광화문 절대 안 나가’ 혹은 반대로 ‘나라면 종북 좌파 같은 짓 절대 안 해’라고 생각하더라도, 누군가는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까지 염두에 두고 끌어안는 태도를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할 말은 조목조목 하면서도 배려하는 글쓰기, 아이러니를 이용해 설득하는 글쓰기를 추구한 제인 오스틴의 모습은 본보기가 된다. 지지자만 끌어안는 글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글은 쓰는 태도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 ‘제인 오스틴 월드’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아무래도 ‘제인 오스틴’ 하면 대중적으로 많이 사랑받은 작품이 《오만과 편견》 아닌가. 그런 점에서 2005년 개봉한 키이라 나이틀리 버전의 〈오만과 편견〉을 먼저 보는 것도 좋겠다. 《오만과 편견》의 영화 버전만 골라서 봐도 재밌지 않을까. 영화 〈비커밍 제인〉을 통해 오스틴의 삶에 접근해볼 수도 있겠다.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좋다. 마니악하게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권한다. 《오만과 편견》을 바탕으로 만든 좀비물이라 ‘이게 뭐야?’ 하는 분들도 있는데, 발랄한 작품이다. 나는 재밌게 봤다.(웃음)

■ 각주 

1) 조선정,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민음사)에서 가져왔다. 날짜 오기를 바로잡고, 나이를 영국 기준에 맞게 고친 것이다(6월 18일 → 7월 18일 / 마흔두 살 → 마흔한 살).

 

진행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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